내가 당신을 생각할 때 - 김설하

좋은 시/김설하님 시 2009.01.21 15:36
내가 당신을 생각할 때 - 김설하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정거장
칠이 벗겨진 의자를 비워두고
슬며시 다가서는 기척도 모른 채
텅 빈 길로 멍하니 시선이 고정된 그녀
우연이었을까 바람 쌔하게 분 것은
입술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는
작은 움직임에서 꽃향기가 났지 아마

무슨 샴푸를 쓸까
어떤 비누 향 이었을까
흐린 날이면 창밖에 눈을 대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노라면
풍경 위로 그녀가 겹쳐지곤 하여
잘근잘근 씹힌 쌉싸래한 담배처럼
잿빛 외벽의 새치름한 선간판처럼
기억을 밀어내며 흔들렸지

가끔은 잠속에도 나타나
홀린 듯 몇 걸음 따라가다가
그녀에게 말을 걸지도 못했는데
천천히 돌아보는 창백한 얼굴
꽃잎보다 곱던 연분홍빛 입술
놀란 표정이 토끼 같다고
말해주지 못해 안타깝더니만
한참 지나고서 라일락인걸 알았는데
이미 그녀는 떠난 뒤였을 거야

누군가 기억할 버스 정거장
재개발지역으로 묶였던 거기께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면서
그녀의 흔적을 묻어버리고
황망한 그날의 흑백 풍경
가슴을 메우는 비밀이겠지만
변함없이 계절로 오는 꽃내음
흠칫 놀라 깨어보니 꿈이던 그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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